[기획] 영화를 사랑하는 자매가 만든 아지트 ‘헵시바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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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헵시바 극장’을 운영하는 자매의 모습. 동생 장서경(좌), 언니 장윤희(우)

 

후회 없는 ‘불금’을 보내기 위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무심하게 뒤지던 중 영화를 상영하는 이태원의 바를 발견했다. 당장에라도 영화 <물랑루즈> 속 니콜 키드먼이 춤을 출 법한 공간이다. 한쪽 벽면에는 영화를 상영하고, 좌우에 달린 빨간 커튼이 서커스 무대를 연상시키는 바에서는 와인을 따라준다. 벨 에포크 시절 파리로 시간 이동을 한 것 같은 곳.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태원 구석에 자리한 극장 겸 바를 만든 두 자매를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친구보다 더 친한 자매다. 언니 장윤희(29)다. 무대미술과 연출을 전공했다. 동생 장서경(27)이다. 연기를 전공했고 다음 학기에 졸업한다. 어릴 적부터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서인지 전공도 비슷해졌다.


‘헵시바 극장’은 어떻게 탄생했나.
(윤희) 자유로운 분위기의 집안에서 방목형으로 자랐다. 취업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학교에서 즐겁게 해왔던 일을 하면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성취감을 얻고 싶었다. ‘헵시바 극장(이하 헵시바)’은 그렇게 탄생했다. 카페나 바를 만들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인테리어를 한 뒤 메뉴를 정했다. 더불어 연극인들의 구심점이 되길 바랐다. 초반에는 공연을 마친 지인들이 뒤풀이하러 왔다. 아틀리에 같은 공간이었다.

인테리어가 범상치 않다.
(윤희) 손님들이 “다른 세계에 온 것 같다”고 할 때 기분이 좋다. ‘헵시바 극장’은 우리의 무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연극적인 것을 좋아한다. 연극 무대를 보면, 천장에서 닭이 날기도 하고, 아주 큰 신발이 등장하기도 한다. 현실에선 엉뚱하지만, 무대에서는 말이 되는 상황이다. 주로 실험극에서 영감을 받는다. 이오네스코의 희곡 <의자> <대머리 여가수>를 떠올려보라. 열린 텍스트 안에서 무대 디자인과 연출이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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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래된 느낌의 벽면에 붙은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좌), 어릿광대 모양의 조형물(우)

 

(서경) 곳곳에 붙은 종이들은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다. 이처럼 가게 안에 실험극의 요소를 녹였다. 살바도르 달리도 좋아한다. 스페인의 달리 박물관에서 욕조와 세면대가 천장에 붙어있는 작품을 봤다. ‘익숙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더라.

(함께) 이런 경우가 있었다. 천장에서 물이 새는데 꼭 고쳐야만 하는지 의문이었다. 미술관처럼 바가지를 두고 이름을 붙이자는 말도 나왔다. (웃음) 손님이 원하는 위치에 두고 앉도록 의자도 배치하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타협했다. 손님들이 불편하면 안 되니까. 언젠가 더 넓은 공간이 생긴다면, 실험을 통해 더 선명한 색을 띤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영화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나.
(함께) 우리 기준에서 좋은 영화를 고민해서 선정한다. 처음엔 주제를 정하지만, 좋은 영화가 너무 많아서 선정 과정에서 섞이는 편이다. 또 한 주당 총 6편을 상영하는데, 고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보통 월요일 낮에 인스타그램에 올리는데, 고민하다가 화요일에 올리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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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헵시바 극장’의 영화 상영 공간(좌), 8월 둘째주 상영작(우)

영화 취향이 궁금하다.
(윤희) 피터 그리너웨이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처럼 영화도 실험적인 쪽을 선호한다. 또 시각적으로 풍부한 영화를 즐겨보는데, 줄리 테이머 감독의 영화가 그렇다. 그는 무대 디자이너로서 뮤지컬 <라이온킹>이 브로드웨이에서 상연할 때 의상을 담당한 이력도 있다. 그런데 영화도 잘 만든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타이투스>를 좋아한다.

(서경) 레오 카락스 감독의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처럼 감성적인 영화가 좋다. 특히 주연 드니 라방이 좋다. <광인>을 보면 몸짓이 특히 인상적이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처럼 상상력이 넘치는 작품도 좋다. 최근에는 우디 앨런의 <빅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를 봤다. 유쾌하더라. 심지어 <업>처럼 애니메이션도 좋아한다. 사실 좋아하는 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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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언니 윤희씨가 좋아하는 <타이투스>와 동생 서경씨가 좋아하는 <퐁네프의 연인들>(네이버영화)

‘헵시바 극장’이 어떤 장소가 되길 바라는가.
(서경) 예술을 하는 친구들이 종종 바에서 노래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주변에 연극이나 뮤지컬을 하는 친구가 많다. 1인극이나 시 낭독처럼 공연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바도 보면 인형극에 적합한 형태다. 다음 학기에 인형극 실습을 수강할 예정이다. 인형극도 상연하려고 한다.

(윤희) “다른 세계 같다” 이상의 예술적인 영감을 얻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헵시바’를 만들 때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다른 곳에 비해 불편할 수도 있다. 화려한 요리와 술을 예상한다면, 메뉴도 기대에 못 미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초점이 다르다. ‘헵시바’만의 특별함을 즐겼으면 좋겠다. ‘헵시바’를 통해 영화, 연극을 비롯한 예술을 즐기고 공유하길 바란다.

자매는 이번 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공수한 진을 들인다고 전했다. 향수를 만들었던 오너가 만든 술로, 진 한 잔에도 다양한 향기가 깃들어 있다고. 서경 씨는 고흐 그림에 등장하는 초록색 술을 언급했다. 그의 표현대로 예술가들이 아지트에서 술을 마시듯 ‘헵시바’에서 진으로 만든 칵테일을 맛보자. 물론 자매가 선정한 영화도 함께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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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헵시바 극장’에서 판매 중인 메뉴 치즈&살라미

기획 : 성민지 기자
비주얼다이브 디지털편집국 뉴스팀 | writer@visuald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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