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칼럼] 내가 좋아한 도시, 서울…‘힙’한 그 동네

1서울 ‘힙’한 그 동네-‘덜덜 도시’

(사진=서울시)

prologue.

골목 모퉁이를 돌면 편의점이 보인다. 편의점 옆 세탁소를 지나 걷다 보면 또 다른 편의점. 옆 건물엔 ‘휴대폰 제일 싼 집’이라고 대문짝만한 글씨를 써 붙여놓은 휴대폰 가게 그다음엔 새로 생긴 부산에서 왔다는 핫도그 가게 그리고 또 편의점. 다음에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take-out 할 수 있는 카페. 그 건너편에는 프리미엄 김밥집 그리고 편의점.

우리 동네 풍경이다. 집에서 1㎞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가려면 이곳을 지나쳐 가야 한다. 함께 공부하는 미정이도 영지도 다 비슷한 모양의 길을 지나 도서관에 온다. 나는 상도동에, 미정이와 영지는 화곡동, 아현동에 살지만 우리들 동네는 다 닮아있다. 참, 버스를 타고 다니는 진희는 도서관에 오는 길마다 예쁜 동네를 자주 본다고 했다.

2서울 ‘힙’한 그 동네-‘덜덜 도시’

(사진=서울시)

몇 년 전 ‘당신은 몇 단계 도시에 살고 있느냐’는 글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됐다.

해당 글에 따르면 본인이 사는 동네에 있는 상점을 통해 ‘더(more) 도시’와 ‘덜(less) 도시’를 따지는 식이다.

내용은 이렇다. 동네에 파리바게트나 던킨도너츠가 있으면 1단계 도시, 파스쿠치·커피빈 등 커피 체인점은 2단계, 그중에서도 단연 인기인 스타벅스가 있다면 3단계 도시에 사는 게 된다. 거기다 오리지널 글레이즈 도넛 두 더즌을 살 수 있는 크리스피크림 도넛점이 있다면 4단계 마지막 5단계는 맛과 건강의 상징 스무디킹이 있어 줘야 ‘더더 도시’에 사는 ‘더더 도시인’임이 입증된다.

 

3서울 ‘힙’한 그 동네-‘덜덜 도시’

(사진=연합뉴스)

아파트 단지 1층 슈퍼가 문을 닫으면 아이스크림을 내일 먹어야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24시간 편의점은 밤새 불을 훤히 밝히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는 우리 삶을 편하게 해줬지만 그게 어쩐지 조금은 불편하기도 하다. 과거 ‘우리 동네’에 대한 기억이 점점 잊히는 까닭이다.

우리는 ‘더더(more and more)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가끔 ‘덜덜(less and less) 도시’를 그리워한다.

최근 인스타그램엔 요즘 ‘힙’하다는 동네 사진이 자주 올라온다. 화려한 빌딩숲, 세련된 인테리어와는 조금은 거리가 먼, 그렇지만 충분히 따뜻하고 아름다운 우리들 동네. 서울에서 요즘 가장 ‘힙’한 그 곳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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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시)

1. ‘한국의 브루클린’ 성수동

‘한국의 브루클린’. 요즘 성수동에는 이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공장이 즐비했고 사람이 살기엔 어두침침했던 곳. 본래 성수동은 소규모 공장이 밀집돼 있으면서 아파트나 주택이 공존해 있는 보기 드문 동네였다. 1960년대 초 정부 도시계획 아래 완성된 모습이다.

1990년대 IMF 경제위기를 겪으며 수제화 업체들이 이곳에 모여들면서는 수제화 거리를 형성, 우리나라 수제화 제조업체 절반 이상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한국 산업 역사가 여기서 이뤄진 셈이다.

그렇지만 사람 소리보단 기계 소리가 더 컸고, 동네에선 가죽 냄새가 진동했다. 허름한 건물이 성수동을 회색빛으로 물들였다.

5서울 ‘힙’한 그 동네-‘덜덜 도시’

(사진=서울시)

하지만 2011년 ‘지역경제 활성화’란 이름으로 성수동에 색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수제화 특구’ 성수동의 새 이름이었다. 1970년대 정미소였다가 창고로 쓰이던 ‘대림창고’가 그 시작을 알렸다. 수제화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고 주말마다 패션 행사가 펼쳐졌다.

서울시와 성동구청은 수제화 특구의 명성을 되살려 구두장인 브랜드를 선정, 성수역 1~2번 출구 사이엔 ‘프롬 에스에스’라는 구두점이 문을 열었다.

젊은 아티스트들은 옛 모습이 남아있는 성수동에서 새 시대를 이끌고자 모여들었고 지금 성수동은 예술적 감성이 가득 찬 동네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이곳엔 금속 부품 공장을 개조한 카페 ‘어니언’이 문을 열었다. 커피와 빵 냄새가 일대를 장악했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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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시)

2. 남산 아래 달동네 이제는 ‘뜨는 동네’ 후암동

이 동네 명소는 ‘108계단’이다. 해방촌과 후암동의 경계쯤에 위치한 이 계단은 하늘 계단으로 불린다. 가쁜 숨을 내쉬며 계단 끝에 오르면 하늘 위에서 세상을 내려 보듯, 남산타워와 후암동 전체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계단 하나가 없어져 107개의 계단이 됐다.

사실 이 동네는 조선 시대에는 한적한 농촌 마을이었다가 일제강점기 일본인 신시가지로 개발됐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삶의 터를 잃은 실향민들이 모여 폐자재로 판자촌을 짓고 살 곳을 꾸렸다.

7서울 ‘힙’한 그 동네-‘덜덜 도시’

(사진=서울시)

남산과 서울역 등을 찾는 발걸음은 많았지만, 후암동은 외로운 동네의 상징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산업화 과정에서도 소외됐다. 수많은 실향민이 모여들면서 지금의 후암동, 해방촌이 만들어졌다. 해방촌이라는 이름도 당시 거주하던 이들이 “해방이 되면 평안도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 붙여졌다.

지금 이곳은 조금 특별해졌다.

서울역 7017 고가 보행로 사업과 용산 일대 개발이 맞물리면서 부동산 가치가 상승, 주택 매입과 상가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다. ‘제2의 경리단길’로 불리는 이유다.

후암동은 인근 이태원과 경리단길의 높은 임대료를 피해 넘어온 상인들이 상권을 형성했다. 낡은 주택가 사이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문을 열면서 후암동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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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더백푸드트럭)

특히 수십 년 된 벽돌집 옥상을 ‘루프톱 바(Looftop bar)’로 개조하면서 저녁이면 야경을 보기 위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그중 주택 건물을 개조해 문을 연 수제 버거 집 ‘더백푸드트럭’은 비좁기도 하고 계단도 가파르지만 연일 손님맞이에 정신이 없다. 후암동을 내려다보며 탁 트인 옥상에서 먹는 햄버거 맛을 보기 위한 손님들이 이곳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후암동 길목마다 자리한 옛 건물과 간판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소외된 지역에서 이제는 옛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한 동네로 남은 후암동, 남산 아래 달동네엔 환한 빛이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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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시)

3. 철 냄새나는 골목에서 예술 공간으로, 문래동

영등포역에서 잘못 들어서면 만나는 곳. 문래동을 쉽게 설명하면 그렇다.

낙후된 철공소 골목. 문래동은 일제강점기 방적 공장이 들어서면서 철강 공장, 철제 상이 모여들어 형성됐다. 당시에는 방적 기계를 ‘물래’라고 불렀는데 거기에서 문래동 이름도 지어졌다.

이곳 철강거리에 정착했던 이들은 높아지는 땅값에 짐을 뺀 지 오래다. 아직 남은 공장들만이 기계를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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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재개발 예정이었다가 취소되면서 문래동은 철 냄새를 풍기는 동네에 그칠 줄 알았다.

하지만 2010년 1월 이곳에 문래예술창작촌이 들어섰다. 철을 주재료로 하는 조각가 등 예술인이 모여 철공소와 공생하는 독특한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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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회색빛 건물엔 벽화가 그려졌고 문 닫은 공장은 갤러리가 됐다. 작은 가게에는 홍대에서 활동하던 인디 예술가들이 자리를 깔았다.

곧 문래동에선 음악이 들리고 예술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에는 문래동 대선제분 공장에서 2016 F/W 헤라 서울패션위크가 열렸다. 공장에서 열리는 패션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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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스팔트)

술집도 곳곳에 들어섰다. 문래역에서 문래동 우체국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아스팔트’라는 술집은 작지만 ‘그냥 동네에서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소줏집’ 같은 분위기로 문래동과 어쩐지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기획 : 김혜민 기자
비주얼다이브 디지털편집국 뉴스팀 l visualeditor@visuald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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